과학과 기술 - 새해, 과학기술계에 바란다 기고

새해, 과학기술계에 바란다 (원본링크

상상력이 미래의 경쟁력이다

상은 언제나 현실을 앞선다. 1970~80년대 007시리즈나 TV 시리즈물이었던 전격 Z작전 같은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그 시절 상상하지 못했던 첨단 무기들을 들고 나와 단숨에 적을 제압하고 영화는 행복한 결론으로 끝난다. 기억나는 첨단 장비는 초소형 무선송수신기, 귓속에 넣어놓고 주인공을 지원하는 기지의 어여쁜 조력자의 도움을 받는다. 도주하는 적의 옷 혹은 자동차에 작은 크기의 위치 추적장치를 달아 놓고, 미행하여 급습한다.

전격 Z 작전의 주인공 마이클은 생각을 하는 키트라는 자동차를 운전하며 위기의 상황일 때 손목에 찬 시계에 대고 명령을 내린다. “키트 도와줘.” 그러면 키트 자동차는 주인공이 있는 장소까지 혼자 알아서 운전을 해서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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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면서 “맞아. 예전에 그랬었지!” 하는 분들과 “그게 신기한거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것들이 별로 신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마도 얼마 전 공인시험장에서 적발된 귀에 넣는 좁쌀 만한 소형 수신기를 이용한 부정행위 뉴스를 보신 분일 수도 있다. 또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GPS 기술을 이미 알고 있거나, 모른다 하더라도 이미 내비게이션이나 ‘내 폰찾기’ 과 같은 위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분일지도 모른다. 송수신기 역할만을 하던 마이클의 시계보다 더 똑똑한 스마트 시계를 알고 있거나 이용하고 있는 분도 있을 수 있다. 구글의 무인자동차가 네바다주에서 면허증을 발급받은 것이 이미 1년도 넘은 뉴스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린 시절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오던 미래의 기술들이 이제 더 이상 허황된 허구의 사실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을 체험한 세대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생활의 변화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상상의 속도가 현실의 발전에 따라잡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공상과학 영화는 우리의 미래를 상상할 때, 멸망 이후 재건되는 지구, 우주 식민지 등, 더 좋아진 미래를 상상하기보다 더 나빠진 미래를 소재로 삼고 있다. 소재가 많이 고갈된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에 강조되고 있는 것이 바로 ‘콘텐츠’이다. 콘텐츠가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기술의 진보가 포화상태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 디스플레이장치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해상도에 거의 가깝게 발전하고 있다. 그 이상의 해상도 개선은 인간에게는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 또한 처음에는 클럭수가 기술 발전의 척도가 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코어의 수로 옮겨졌다. 이제는 특정 용도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아니면, 일반적인 사무, 게임 정도는 웬만한 컴퓨터에서 충분히 다 동작을 한다. 조금 더 속도가 빠른, 조금 더 많이 처리하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제 기술과학 산업분야에서는 인간의 상상 및 욕구를 앞서 소비자를 선도할 수 있 는 기술을 찾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이폰이다. 처리속도가 빠른 휴대폰이 있음에도, 더 화려 한 디스플레이를 가진 제품이 있음에도 아이폰이 독보적인 위치를 몇 년째 유지하고 있는 것은 첨단 기술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것을 ‘감성’ 있다라고 표현하 는 분도 있다. 넓은 범주에서 이 감성을 담은 상품도 콘텐츠를 잘 개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필자를 포함한 한국식 교육을 받아온 세대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식 교육은 매년 세계 청소년들 의 학업성취도 조사에서 상위에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스스로 생각하 는 능력, 학업에 대한 흥미는 하위에 머무른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한국의 교육정 책은 보편적인 지식을 습득하도록 하는데 많은 관심을 둔 나머지,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교육 하는데는 미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콘텐츠는 창의적인 사고,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그 상상력은 마치 ‘생각해 봅시다’라는 뜬금 없는 주관식 문제의 답과 비슷하다. 만약 시험에 정답이 없을 것 같은 ‘무엇 무엇에 대해 생각 해 봅시다’ 라는 문제로 A4 용지 한 장을 채우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기존 교육체계에서 공부 한 이공계 학생들은 당황한다. “어떠한 키워드가 들어가야 정답처리가 될까? 해당 대상에 대 한 나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써야 하나 부정적으로 써야 하나?” 모든 생각이 정답을 찾기 위해 집중되어 있다. 즉, 이미 정답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의해 결정되었다는 가정을 하고 그걸 찾 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답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서, 문제가 잘못된게 아닐까 하 는 생각, 혹은 이런 문제를 만들어볼까 하는 좀더 근원적인 접근을 할 여유가 없다. 

대학생들이 방학기간에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해외 연수를 하고, 학점을 잘 받으려고 노 력하는 모습은 얼핏 보면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스스로 열린 질문으로 대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사회가 던져놓은 정답이 있는 문제 들의 답을 찾으려 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이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세대이다. 그들 스스로가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데 익숙해지고, 그러한 문제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그 패러다임 안에 무한한 상상 의 자원을 쏟아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상상은 지식의 습득과는 다른 영역의 활동 이다. 교과서적으로 가르치거나 암기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 본연의 활동이며,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더 활발하게 발생하는 행위이다. 억지로 키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에, 오히려 몸과 마음의 여유를 줄 수 있는 교육환경이 중요하다. 당장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교과목을 신설하여 수능에 반영, 혹은 대학입시에 상상력을 측정하는 문항 추가 등으로 해결 될 수 있는게 아니다. 지식 축적에 기반을 둔 과학교육의 패러다임 상상에 기반을 둔 창의력 향상으로 바꿔야 한다. 이제 상상하는 것은 능력이며 그 능력은 현재의 과학기술에 ‘왜’라는 질문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발전을 이끌어 낼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기존 세대가 남긴 업적 과 기술적인 발전을 계승하여 우리의 상상력과 새로운 기술 산업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정신 으로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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